[특별기고/이해학] "통일은 민족의 시대정신이자 인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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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8-27 11:41 조회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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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학 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
- 승인 2025.08.26 12:53
통일은 불가능의 기적이 아니라 가능성의 실천
신문지 합봉법, 꿀벌에게 배우는 통일의 지혜
분단 72년, 이제는 문을 열어야 한다
필자는 민주화와 인권,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종교인이자 사회운동가다. 한신대학교 재학 시절 ‘3·1 명동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며 유신체제에 맞섰고,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민주개혁국민운동과 6·15공동선언실천협의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성남시의 전신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광주대단지에 주민교회를 세워 빈민·노동자와 함께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왔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민화협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며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앞장서왔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통일이다
1974년 안양교도소에서 장준하 선생께 “왜 선생님은 유독 권력의 박해 대상이 됩니까? 선생님이 다른 정치인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하고 질문했다. 다음은 장 선생의 답변이다.
“나는 남과 북을 통으로 바라본다. 다른 정치인은 반쪽에 머무르고 있다. 분단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 조국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정치가, 경제가, 문화가 통일을 목표로 하지 아니할 때 분단 이권을 즐기는 분단주의에 안주한다. 이대로 가면 통일이 어려워진다. 나는 통일을 근본과제로 삼기에 분단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는다.”
한국은 통일이 가능한 나라지만 못했고, 독일은 불가능한 나라였으나 통일하고 말았다.
1987년, 독일의 파울 슈나이스 목사는 나에게 “대한민국은 통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정말 부럽다”고 말했다. 독일은 전범국가로서 국제 정치적 제약 속에 동서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의 합의를 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은 전범국가도 아니고, 전범국가인 일본을 대신해 분단되었기에 세계가 빚진 상태라는 것이다. 더우기 남북한은 민족적 동질성이 살아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1990년 독일은 통일에 성공했고, 한국은 여전히 분단 상태로 남아 있다. 해방 80주년, 분단 72주년인 금년도 오히려 남북의 긴장과 대결은 점점 심화되고 있으며,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
이 비극의 상징적 공간이 바로 DMZ(비무장지대)다. DMZ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동서 진영이 만들어놓은 대결 구조의 담보물이자 한반도는 그 희생양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80년 가까이 고난의 질곡을 견디며 살아왔다. 과연 이 구조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가?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이 없다.
북은 남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남은 동족이 아니며 통일을 시대정신으로 삼지 않겠다고 한다. 남과 북에서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사라져 버렸다.
온전한 통일방법 ‘신문지 합봉법’에서 배우자
80년대 통일 강연에서 자주 인용했던 비유가 있다. 양봉에서 사용하는 ‘신문지 합봉법’이다. 농민들이 가을에 두 개의 벌통을 합치는 것을 보았다. 벌들은 서로 다른 벌통의 냄새를 구분하며 낯선 냄새를 적으로 생각하고 서로 죽여서 벌통이 시체 더미가 되고 만다. 하지만 신문지를 사이에 둔 채 벌통을 합치면 신문지의 작은 구멍을 통해 냄새가 서서히 섞이며 적과 우리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때 신문지를 제거하면 더는 싸우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이념’의 냄새만 넘어서면 된다. 외세가 길들여준 이념으로 우리는 80년을 싸웠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을 보호하는 전초기지 역할과 중국을 방어하는 최전선 역할을 해왔다. 다른 통의 벌도 형제인 것을 발견하고 동포라는 것을 발견하면 된다.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동방의 등불이요, 아시아의 중심국이 된다. 그때는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을 끌어안고 화해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세계가 해보지 못한 하늘 뜻 이루는 통일을 통해 평화의 종주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다음은 지난 6월 6인 청와대 초청 보훈단체 대표 인사말에서 한 제안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DMZ 평화공원을 구상하였습니다.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남과 북에서 공동으로 참여하여 북의 권위주의 체제가 아닌, 남의 천민자본주의도 아닌, 홍익인간 대동 세상의 제3 체제의 평화마을을 만들어 남북을 통합시키는 지름길을 택합시다.”
이것은 박한식 박사(미국 거주)가 주장해 온 통일이론이다. 남북 관계는 정부 시스템 안에 묶기거나 유권자 표를 의식해서는 풀리기 어렵다. 민(民)이 주도해야 한다.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고 냄새가 섞일 시간과 공간만 허락된다면 우리는 충분히 하나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외세가 부추긴 갈등과 투쟁에 길들여졌고, 남북 양쪽이 쌓아온 증오의 장벽이 너무 높다. 하지만 ‘민’이 주도하는 교류와 이해는 이 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서독 정부는 신뢰 쌓기에 ‘올인’ 하였다
독일 통일의 이면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특별한 사건이 있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동독 총리 호네커의 관계에서 비롯된 작은 ‘사랑 이야기’다.
브란트 총리 재임 시절, 동독 총리 호네커의 조카딸이 서독 청년과 사랑에 빠져 망명을 시도한다. 냉전 중 벌어진 일이라 큰 외교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브란트는 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호네커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그리고 ‘기본법에 의거하여’ 정식 여권을 발급해 조카딸이 서독으로 올 수 있도록 제안했다. 호네커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옳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 결정을 수용했다.
이 신뢰의 실천은 이후 동서독 간 자유 왕래의 물꼬가 되었고, 통일의 전환점이 되었다. 브란트는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대신 덮어주고 배려했으며, 서독은 경제적으로도 동독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이 모든 정성과 공들임이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반도는 왜 실패했는가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반대였다. 북한 고위 인사의 망명을 우리는 체제경쟁을 위해 이용했다.
김정일의 여자 성혜림의 아들 이한영 사건은 북한 체제의 결함을 폭로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졌고 황장엽의 망명 이후 보복살인으로 끝났다.
제네바 합의의 파기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1994년 9월,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기본 합의문에 서명했다. 미국은 1,000MWe급 경수로 2기 건설과 매년 50만 톤의 중유 제공을 약속했고, 북한은 핵 활동 전면 동결, NPT 복귀, IAEA 사찰 수용을 약속했다. 양측은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남북 대화 재개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원자로 건설은 무산되었고, 에너지 지원도 차질을 빚었다. 결국 북한은 핵 동결을 포기했고, 미국은 2001년 9·11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합의를 공식 파기했다. 이로써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한 기회는 무너지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휴전협정의 당사국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승만의 휴전협정 반대로 남측 정부는 모든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협상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미국이 주도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북이 남을 통일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것은 한국이 평화협정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을 등에 업고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데 안주하고 있으며, 정권에 따라 남북 정책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있다. 인간의 상품화와 존엄성 상실이 북의 불신을 심화시키고, 대화의 문을 닫게 만들었지만 북한의 인권문제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
통일의 선구자들을 배우자. 여운형·조봉암·장준하·문익환
백범(白凡) 김구(金九)는 "38선을 배고 죽을지언정 분단은 안 된다"고 했다. 한반도의 분단은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다. 분단은 외세에 의해 강제되었고, 이후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체제를 정립하며 수십 년간 적대와 대결의 시간을 견뎌왔다. 남북 모두 체제 경쟁에 함몰되었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통일의 염원은 점차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은 미소가 물러가고 좌우 합작을 주장하다가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 등에 의해 암살 당하였다. 국민들에게 대통령 후보감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받고 있었지만 미국이 원하는 지도자가 아니었기에 결국 12번째 테러로 제거해 버렸다.
그는 1944년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을 만들어 해방에 대비했던 유일한 지도자였다. 체조 축구 정구 탁구등 체육을 도입하고 최초의 IOC위원이 된 멋쟁이다. 하지만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 대립의 와중에서 여운형과 같은 중도파 세력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그는 1946년 1차 미소공동 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간 후 김규식(金奎植)과 더불어 좌우합작운동을 벌였다. 다음은 김규식이 여운형의 암살 소식을 듣고 한 평가다.
“우리는 한 위대한 혁명 투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유일 목표인 신국가 건설을 위하여 전 민족이 합작으로부터 완전 통일에 나아감으로 최후 목적에 도달하기를 제창하여 이에 최종까지 노력하던 지도자를 상실하였다. 곧 민족 전체의 손실이다.”
“모든 통일은 좋은가?” 장준하는 이에 대해 단호히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은 민족사의 전진이며, 자유·평등·복지 같은 모든 가치가 진정한 실체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라 보았다. 통일이 전제되지 않은 민주주의, 통일을 포기한 자유는 허상이며 거짓 명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체제를 지향하든, 그 체제의 진정성과 정당성이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과 분리될 수 없다는 강한 경고다.
조봉암 선생 역시 진보당 창당대회에서 “남북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명령”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오직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인민의 자유가 실현되는” 복지국가, 민주국가의 이상을 제시했다.
조봉암을 비롯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통일관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적 질서와 평등을 추구하는 비전이었다. 그것이 참자유다. 특히 공통된 합의는 토지공개념이었다.
그러나 국토점령에 눈이 먼 강대국들은 자기들 이익에 충실할 대리인을 지도자로 세웠다. 우리는 서로 오랑케라 부르며 자랐다. 분단은 생명지향적 보호망을 다 찢어버리고 지도자들은 제국의 꼭두각씨가 되어버렸다. 남과 북은 이념을 팔아 정권을 유지하기에 통일도 평화도 불가능하다.
문익환 목사은 1989년 3월 25일, 북한을 방문했다가 귀환 직후 ‘줄탁선언(啐啄宣言)’을 발표했다.
“이제는 민이 먼저 나서서 벽을 깨뜨려야 한다.”
“통일은 권력이 아닌 민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분단의 벽을 허무는 일은 곧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문 목사는 국민을 바라보는 생명지향적 정부를 고대한 것이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까지 기다린다”(베드로후서 3장 9절)고 했다. 모두가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여 서로를 한 형제로 받아드리기까지 공존체제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과나무나 참나무는 종족보존을 위해 많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누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나누며 사는 것이 본질이다. 인간도 남을 위해 살아야 행복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본질이다.
이념의 통일은 헛수고다
이념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것은 헛수고다. 잡아먹고, 먹히지 않으려는 끝이 없는 투쟁일 수밖에 없다. 전쟁을 통한 베트남 통일은 너무도 큰 비극이었다. 남예멘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평화적 합의를 통해 자본주의인 북예멘과 통일했지만 결국 내전으로 발전해버렸다.
공존의 실천만이 공영으로 가는 길이다. 해방정국에서 모든 정당과 국민들은 분단을 예상하지 못했다. 소련이 일본을 침략하려 할 때 일본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궁여지책으로 38선을 제안하여 이북을 소련에게 주고 미국이 남쪽을 지배하게 됐다.
DMZ은 우리가 그은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남과 북이 “DMZ는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함께 선언하면 된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전쟁하면 공멸한다. 공존만이 살길이다. 공존을 택하면 더불어 공영한다. 이것이 진리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상상을 현실로 전환시킬 지도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북의 지하자원과 남의 기술이 결합해야 한다. 100년을 보장받는다.
유라시아 철도 건설을 통해. 물류센터의 중심이 되면 2백 년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때는 아시아의 국가지형이 바뀐다. 이것은 박원순과 짐 로저스의 꿈만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번영의 지름길을 놔두고 체제전쟁이라는 멸망의 길에서 80년을 서성이고 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대주의적 정치인들의 한계이다. 우리가 생명의 길을 실천하면 우리의 존재가치가, 우리의 존엄이 살아난다.
나는 문재인 정부에 요구했다.
천안함사건 재조사하여 진위를 가리자.
중국에서 납치해 온 북한식당 종업원들을 돌려보내라.
그러나 문 정부는 듣지 않았고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거절하였다. 북이 바라는 북미수교를 돕지도 못했다. 그결과 북은 남을 포기해 버렸다. 통일협상도 물건너 가고 말았다. 통일은 끝났다.
새 정부에 바란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결단하자.
낡은 국가보안법을 걷어내자.
종전협정 평화세상 중립국을 지향하자.
DMZ에 대단지 스마트 팜 건설 남북민 참여 홍익인간 대동세상 실험하자.(박한식박사 제안)
개성공단을 북과 세계가 참여하여 다국적 가공단지로 만들자.
북한방송을 과감하게 청취하자.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과 귀환지원자 김련희를 살려 보내자.
전쟁무기 구입 그만하고, 국방비 줄여서 북의 굶주린 백성을 모두 살리자.
북의 광물 전량 구입하고 북의 노동력 활용하여 경제부흥 꽤하자.
북의 의료시설 건설하고 운영비 지원하자.
그리고 통일은 하늘에 맞기자. 인간이 하늘 뜻으로 살면, 이 세상에 하늘나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래 없는 930번의 외침으로 고난받은 우리 민족만이 할 수 있기에 하늘이 우리에게 이 일을 맡겼다. 배달겨레 대동세상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