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소식

홈 > 소식 > 자료실
자료실

[자주시보-아침햇살267] 북중, 북러 관계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⑥ (2023. 9. 2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9-20 11:22 조회111회

본문

 

[아침햇살267] 북중, 북러 관계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⑥ 


기사입력시간 : 2023/09/20 [09:19:00]

문경환 기자

(이어서) 

 

미국의 대북 정책 파산

 

1) 총파산

 

북중, 북러 관계가 질적인 발전을 하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총파산하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미국의 대북 정책 파산은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계속 반복되어 왔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정권마다 방법은 달랐어도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 붕괴라는 방향에서 일치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방향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최근 20여 년만 살펴봐도 이를 알 수 있다. 

 

●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2001년 조지 W. 부시가 집권하면서 북미관계는 전쟁 접경으로 급격히 치달았다. 부시 정권은 9.11 테러를 빌미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전 세계를 긴장시키더니 2002년 연두교서에서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였다. 아프간 다음은 이 세 나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실제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무튼 부시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전면적 대북 적대 정책을 천명하였고 기존의 북미 합의를 모두 파기하였다. 2002년 3월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북한을 선제 핵공격 대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또 2005년에는 ‘폭정의 전초기지’, ‘폭압의 종식’,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 같은 발언을 통해 대북 적대 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굴복하거나 수세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2001년 7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미 대결과 관련한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현 타스 통신) 기자의 질문에 “선의에는 선의로 대하고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한 핵보유 선언으로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또 2006년 7월 4일(한국 시각으로는 5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하였고, 10월 9일에는 1차 핵시험을 강행해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18일 에이펙(APEC) 회의에서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싶다고 발언하였다. 북미 양자 회담은 하지 않겠다던 미국이 2007년 초에는 베를린에서 양자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2008년 10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하였다. 부시 정권의 대북 적대 정책이 파산한 것이다. 

 

2008년 10월 12일 연합뉴스는 “북한은 대미 협상의 기본인 ‘동시행동’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라는 20년 숙원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핵 검증 체계도 미국이 당초 요구한 ‘국제기준’ 대신 이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6자회담 기준’을 관철시켰다”라고 평가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테러지원국 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에 굴복했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했다. 친미극우 논객인 조갑제 전 조선일보 편집장도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부시 대통령의 실패를 교훈 삼아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폈다. 전략적 인내 정책이란 쉽게 말해 시간 끌기 전략, 무시 전략이다. 물론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으로 군사적 위협을 하고, 대북 제재도 강화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동원한 대북 규탄도 계속하고, 정치 공세와 인권 공세도 반복하였다. 또 북한 내 김일성 주석 동상을 파괴해 사회 혼란을 일으키려는 시도도 했다. 한편으로는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대북 정책 특별대표를 북한에 보내는 등 위기관리도 시도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최대한 북한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오바마 정부 때인 2009~2017년은 북한의 국력, 특히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시기다. 이 시기에 온갖 전략무기들을 개발할 수 있었고 마침내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전략적 인내 정책은 결국 북한의 핵개발을 인내하며 지켜보는 정책이 되어버렸다. 

 

미국 내에서는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시간만 벌어주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16년 6월 20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안보회의에 참석한 북한 외무성 간부는 “힐러리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우리로 하여금 핵억지력을 가질 수 있게 했다”라고 비꼬았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부를 인수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북한을 대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 능력은 미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기가 막힌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2017년 3월 16일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라고 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한 일괄타결을 노렸다. 북한의 핵무장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므로 미국인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추가 핵시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만 하지 않는 동결 수준에서 타협하고 대신 북한과 중국을 이간질해 반중 전선을 확대하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역시 실패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곧바로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해 다양한 첨단 전략무기들을 공개하고 발사해 미국인을 불안에 떨게 했다. 또 북중관계가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동지적’ 관계로 변하였다. 

 

2021년 출범한 조 바이든 정부는 4월 30일 대북 정책 검토를 끝냈다면서 “일괄타결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북 정책은 오바마·트럼프 정부 대북 정책의 중간 지점이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결과는 오바마 정부 시기와 비슷하게 북한의 급격한 군사력 강화로 나타났다. 지난 2~3년 동안 북한은 미국도 개발하지 못했고 심지어 세계에 있어 본 적도 없는 기상천외한 전략무기를 속속 공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에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북한을 규탄하면서 대화를 요청하는 모순적인 대응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바이든 정부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해 북한을 압박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북·중·러 연대의 강화 때문에 파산하고 있다. 

 

최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방북과 이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북러 관계가 전례 없는 ‘동지적’ 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다수의 국내 전문가가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에 매달린 윤석열 정부가 빚어낸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러관계의 주선자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이념 외교가 북한의 활로를 열어줬다고 개탄했다. (「김정은-푸틴 만남, “주선자는 윤석열” [공덕포차]」, 한겨레, 2023.9.15., 「김정은 활로 열어준 윤석열 친일‧이념 외교의 역설」,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3.9.14.) 물론 국내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에 초점을 맞췄지만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예외 없이 파산하였다. 

 

● 미국의 대북 정책 파산 선언

 

여러 미국 전문가도 자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앞서 언급한 틸러슨 장관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2017년 10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25년 동안 북한을 상대하는 데서 실패했다.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021년 4월 30일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라면서 “지난 4개 미 행정부의 노력이 이런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클린턴-부시-오바마-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2021년 11월 17일 부산에서 열린 제17회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기조 발제에서 “30년간 미국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라고 주장하며 “미국이 고수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혹평했다.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핵정책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2022년 10월 9일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북한은 이미 (비핵화 싸움에서) 이겼다. 쓰디쓴 현실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조지프 전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은 2023년 3월 31일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서 “지난 30년간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라며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모든 미 행정부에서 일관성 있게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6년 5월 27일 시사인 칼럼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완벽히 실패했다」에서 “어중간한 ‘전략적 인내’라는 무정책의 정책을 펴면서 북한에 시간만 벌어줬다”라며 “솔직히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라고 지적했다. 

 

윤은주 뉴코리아 대표는 2023년 5월 30일 유코리아뉴스 칼럼 「미국의 대북정책 실패와 우리의 대응은?」에서 “30년간 이어진 북핵 협상과 제재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미국의 대북 협상과 제재는 모두 실패”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6년 10월 11일 전남대 대강당에서 열린 특강에서 “미국은 악의 축인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고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북한 NPT 탈퇴, IAEA 요원 추방, 북미 간 제네바 합의 파기 등은 미국의 대북 정책 실패를 입증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역시 미국의 대북 정책이 파산했다고 주장한다. 

 

2015년 1월 24일 노동신문은 논설을 통해 미국의 전략적 인내, 인권 공세, 대북 제재 등의 적대 정책이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를 반석같이 다지는 결과만을 초래”했다며 “단언하건대 미국의 대조선[대북] 정책은 총파산을 면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2017년 7월 12일 노동신문 논평도 “이전 (미국) 행정부들이 조미[북미] 대결에서 참패만을 당하였”다면서 “트럼프의 대조선 정책은 아무런 맥도 추지 못하고 풍비박산 났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음은 남·북·미 모두가 공히 인정하고 있다. 

 

● 자업자득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지점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파산한 원인 가운데는 미국이 자초한 부분도 크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 한 약속을 어긴 것이다. 

 

북미는 양국 혹은 다자의 틀에서 여러 합의를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번번이 합의를 파기하였다.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는 2002년 부시 정부가 파기해 버렸다. 

 

워싱턴포스트는 2002년 10월 21일 보도 「북한에겐 미국이 합의 파괴자(For North Korea, U.S. is Violator of Accords)」에서 “수년간 북한은 워싱턴이 양국 간 합의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크게 불평해 왔다. 북한의 문제 제기는 자가당착적인 측면도 있으나 일리 있는 지적이며, 특히 제네바 합의에 의해 구성된 국제컨소시엄의 관리들조차 인정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2005년 7월 13일 보도 「한국, 북한이 무기 포기하면 에너지 공급 제안(South Korea Offers To Supply Energy if North Gives Up Arms)」에서 “클린턴 행정부 관리들은 경수로 건설이 완료되기 전에 북한 정부가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동의했다고 비공개로 말했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미국은 약속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다. 

 

재일 통일운동가였던 고 정경모 선생은 2009년 11월 30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길을찾아서] 미국이 먼저 파기한 ‘북미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은 처음부터 (북미 제네바 합의) 제2조의 약조를 이행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에요. 김 주석도 세상을 떠났고 어차피 북조선은 내부 붕괴를 일으킬 것이라 보고 빈껍데기 어음을 발행했을 뿐이오이다. 건설하겠다던 100만 킬로와트 원자력발전소 2기도 하는 척만 하다가 중단되었고, 건설기간 중 공급하겠다던 연간 50만 톤의 중유도 결국 말뿐이었으니, 속인 것은 미국”이라고 하였다.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 역시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 정부 정책은 모두 폐기한다) 정책에 따라 부시 정권이 휴지 조각을 만들어버렸다. 

 

2005년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은 아예 합의 전부터 미국의 합의 파기로 곡절을 겪었다. 

 

미국은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경제 지원을 하는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합의하기 나흘 전 마카오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다. “9.19 공동성명은 빛을 보기도 전에 사망 선고를 받은 셈”이며 “6개국이 2년여 심혈을 쏟은 끝에 만들어 낸 작품은 결국 폐기”됐다. (「[북핵 위기 30년] 미국 이제 해답 내놓을 때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3.3.12.)

 

또 한국NGO신문은 2016년 9월 26일 자 보도 「‘9.19 공동성명’, 왜 실패 했나」에서 “북한이 2009년 4월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미국이 법적, 논리적 근거나 명분 없이 북한을 규탄”했는데 이는 “‘상호 주권을 존중’하기로 한 9.19공동성명 2항을 미국이 어긴 것”이며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오바마가 ‘9.19 공동성명’이라는 ‘공든 탑’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2월 13일 6자 회담에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합의문’, 일명 ‘2.13합의’가 채택되었다. 그리고 10월에는 ‘2단계 조치 합의문’(10.3합의)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고 미국도 2008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했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다시 대치 국면으로 넘어가자 미국은 2017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다시 지정했다. 이로써 미국은 2.13합의와 10.3합의도 파기하였다. 

 

한편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식의 협상이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잘 보여준다. 폭파한 냉각탑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걸로 끝나는 행정처분이다.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한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일부 해제를 맞바꾸자고 한 제안은 절대적으로 미국에 유리한 것이었다. 

 

2012년 2월 23~24일 북미는 베이징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관계 개선을 위한 일정한 합의를 하였다. 이를 2월 29일에 발표했기에 보통 ‘2.29합의’라 부른다. 그런데 북한이 4월 13일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미국은 이를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며 합의 이행을 중단하였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금지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조차 인공위성임을 인정하면서도 ‘인공위성이지만 장거리 미사일이다’라는 기적의 논리로 “북한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으며 자주권 존중과 평등의 정신에서 쌍무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2018년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싱가포르 공동합의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유해 발굴과 송환 사업을 성실히 이행했지만 미국은 대북 적대 정책을 고수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호응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제재를 유지하고 있고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더는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은 없다”라고 자랑했다. 결국 북미 고위급 협의는 정체되었고 이듬해 2차 북미정상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처럼 그동안 미국은 북한과의 합의를 번번이 어겼고 이게 결국 대북 정책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앞서 인용한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의 3월 12일 자 보도는 “어렵게 합의해 놓고 이런저런 명분으로 합의를 깬 쪽은 대부분 미국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앞서 인용한 윤은주 대표의 칼럼에서도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지난 30년간 북한 핵 문제를 다루었던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 정책을 복귀해 보면 딱 맞는 말이다. 어렵사리 해법을 만들고도 정권에 따라서 혹은 같은 정부 안에서도 행정부 부서별 이해가 달라 합의를 무산시킨 결과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미국이 합의를 이행했으면 북한의 핵개발을 ‘호미’로 막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가래’를 가져와도 어렵게 됐으니 미국의 자업자득이란 얘기다. 

 

(계속) 


브라우저 최상단으로 이동합니다 브라우저 최하단으로 이동합니다